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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과학혁명의 구조(하)



왜 하필 <과학혁명의 구조>일까? 과학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과학을 썼는지에 대해서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잘 모르겠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한 부분이다. 앞 부분을 읽으며 내가 과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던 이미지들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구실의 흰 가운, 비커, 각종 화학재료 뿐만 아니라 물리, 지구과학, 생물 등 교과과목 이름 등만이 기존에 내가 과학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였다. 이러한 이미지의 과학은 상당히 어렵고 접근하기도 싫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과학탐구영역의 점수가 너무 나오지 않다보니 싫어하게 되었고 결국 3학년이 되어서 문과로 옮기고 사회탐구영역만을 공부하게 되었다. 과학에 관련된 책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이후 처음 접하는 시간이었다.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익숙해졌다. 또한 많은 서적 등 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이러한 말이 많이 사용되는 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쿤의 이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가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 역시도 이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과학이라는 분야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을 보면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9장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과학혁명은 기존에 존재하던 패러다임이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탐사에서 그 방법을 주도했지만 더 이상 그 패러다임이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면서 시작된다. 이 때 정치적, 과학적 발전의 양쪽에서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혁명의 선행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새로운 제도의 틀 속에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찾게 된다. 또한 이러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한 대안에서 다른 대안으로 전환할 때 새로운 대안을 위해서는 옛 대안은 포기하게 된다.

과학 혁명은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이 등장, 탄생하는 기간이다. 이러한 혁명기간 동안의 과학 상황은 정상 과학보다는 전 패러다임의 상황과 더 유사할 것이다. 전 패러다임의 상황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전 패러다임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현상이나 과학이론이 기존의 패러다임의 폐기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과 반드시 반대에 있을 필요는 없다. 예전에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다룰 수도 있고, 이전의 이론보다 수준을 더 높일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과학은 축적적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고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믿어 왔다. 그러나 이는 거의 실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새로운 발견, 이론이 등장, 탄생하는데는 이상 현상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원칙적으로 새로운 이론의 등장은 세 가지 종류의 현상만이 있다. 첫 번째 것은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 잘 설명된 현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이론 구축의 동기나 새로운 출발의 시점을 제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두 번째 것은 기존 패러다임과 그 본질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기존의 이론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세 번째 것은 인식된 이상 현상들로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력히 거부한다. 이 세 번째 형태의 현상이 새로운 이론들의 출발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의 역학과 뉴턴 역학의 관련성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서로는 상대가 잘못된 것임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론은 다른 이론과 경쟁우위에서 우위에 위치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 패러다임의 차이는 필연적이며 양립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러다임은 방법들의 원천이며 풀어야 할 문제이며 문제풀이의 표본으로서 과학을 지탱한다. 패러다임이 없는 정상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9장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핵심은 새로운 현상은 과거의 과학 활동의 어느 부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진화에서 새로운 지식, 이론은 다른 모순되는 종류의 지식, 이론을 대치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터를 대치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과학은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실제로는 상당히 희박하다.

 

10장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과학 혁명은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변화에는 과학자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들은 “같은 장소,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전혀 색다른 것을 보기 때문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출처: http://innonyx.tistory.com/4 >



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토끼-오리"의 시각 게슈탈트 실험을 끌어들인다. 같은 그림을 "토끼"나 "오리"로 보게 되는 이러한 시각적 전환은 일반적인 과학 교육에서 일어나는 지각 능력의 변화와 유사하다.

책에서는 심리적 실험과 과학적 관찰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지적한다. 심리적 실험에서는 피실험자가 다른 권위에 의해서 "지각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지만, 과학 연구는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토끼"를 보는 사람은 "오리"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거나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관찰 활동에서 그러한 "다른 권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자들은 전적으로 "자신들이 보는 것"만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전에는 저렇게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전에는 저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증언이 아니라 간접적인 행동의 증거를 통해서 그러한 "세계관의 변화"를 찾아낼 수 밖에 없다.

책에서 말하는 과학사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운행궤도가 이상한 하나의 별이 항성에서 혜성으로, 그리고 행성으로 변화해간 "천왕성 발견" 및 그에 뒤이은 "소행성 발견"이며 두 번째는 코페르니쿠스의 패러다임이 제안된 이후, "불변"이라 여겼던 천상에서 "무수한 변화들"을 목격하게 된 관측자들 등이 있다.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함께 변하는 것은 과학자의 해석만이 아닐까?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의 위에 존재하는 더 큰 움직임이 과학자 사회를 지배한다고 한다.

각각의 해석은 각기 어떤 패러다임을 전재로 하며, 이는 정상과학의 부분이다. 이는 패러다임을 수정할 수 없으므로, 결국은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10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혁명은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세계관의 변화 없이 새로운 과학이론은 정립되기 힘들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야 새로운 과학지식의 발견이나 이론이 나타게 될 것이고 이것이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11장 혁명의 비가시성

 

혁명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는데 대한 이유는 과학혁명의 존재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위장시키는 권위적 원천으로부터 얻게 된다. 교과서는 해답을 공식화하면서 변화들을 감추어 버리고, 과학의 발전을 선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교육의 형태는 과학의 다른 어느 측면보다도 강하게, 과학의 성격 그리고 과학 진보에서의 발견과 발명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결정지어 왔다.

일반적으로 학문의 권위의 원천이 되는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교과서를 모델로 한 대중 서적 ,철학적 저작, 과학교과서이다. 이 세 가지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공통점도 존재한다. 세 가지 모두 과거의 과학혁명들의 결과를 기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대의 정상과학 전통의 기반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 마다 필연적으로 교과서는 새롭게 쓰여지던지 부분적으로 수정을 하게 된다.

교과서들은 자신의 분야의 역사에 대한 과학자의 감각을 삭제하고 이후 삭제해 버렸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결과물을 제공한다. 선택 혹은 왜곡에 의해서 과거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과 방법의 가장 최근의 혁명에 의해서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 바로 그 규범들에 부합되도록 과학 연구의 역사를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화이트헤드가 "그 분야의 창시자들을 잊기를 주저하는 과학은 패배한 것이다" 한 것은 과학자 사회의 비역사적 기질을 간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때로 그 분야의 창시자들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를 잊거나 수정하는 일도 일어난다.

건축에서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처럼 교과서에 새로운 사실, 개념, 법칙 이론들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 발전되어 온 과거가 아니다. 현대의 정상과학에서의 퍼즐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퍼즐들이 새로 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 다 이런 것은 아니며 그 중 극소수는 과학의 역사적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존재한다.

11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때 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 교과서도 수정 또는 새롭게 집필된다.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 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교과서가 집필되고 배우는 학생들은 새로운 과학 교과서를 가지고 과학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교과서가 나오는 과정은 과학이 축적되어 발전하는 것보다는 이상 현상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장 혁명의 해결

 

위기의 상황에서 등장한 여러 대안은 서로 경쟁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패러다임이 채택되게 된다. 그렇다면 전문 분야의 전체 또는 관련된 소그룹을 자신들의 과학과 세계를 보는 방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후보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정상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사람이지 패러다임을 검증해주는 사람은 아니다. 패러다임 검증은 자연과 패러다임 사이가 아니라 2가지 패러다임의 경합으로 일어난다.

패러다임 후보 간에는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 있다. 그렇다면 공약불가능성은 무엇인가? 과학자들 간의 오해인가?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자들은 뜻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오해를 공약불가능성이라 부르는가? 확실히 모르겠다. 두 후보는 문제 항목, 과학에 대한 기준과 정의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다임 변동과 개종을 거쳐야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 현상을 보던 인식이 변화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많이 이야기 하였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주로 젊거나 기존의 세계에 비교적 덜 익숙한 과학자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탄생한 패러다임도 이전에 발생하던 문제점을 완전히 설명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경우는 빈번하며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자연현상처럼 선택받아 왔다. 즉 패러다임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과학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다.

12장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패러다임 후보는 다른 패러다임과 경쟁하게 되고 누군가는 그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이러한 승리는 항상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개인에 성격, 취향 등 개인적인 요소에 따라서 결정된다. 만약 우수하고 성공할 운명의 패러다임 후보라면 결국은 지지자도 많아지고 연구자도 많아져 패러다임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학자들이 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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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혁명을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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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과학이라는 탐구영역은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과학자들이 움직이고 항상 진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 혁명이 항상 세상의 진보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했다. 하지만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가 불가능하기에 이전의 패러다임보다 발전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과학은 무엇일까?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그 모든 것이 과학이라면 아주 오래 전 유럽에서 회화의 발전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 발전은 여러 다른 분야의 발전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 사회는 일단 하나의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풀이에 집중함으로서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정상과학은 왜 발전적일까? 하나의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자 사회에서 성공적인 작업의 결과는 발전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비과학 분야에서 발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항상 경쟁하기 때문이다. 정상과학의 시기의 교육은 성공적이고 본연적으로 발전하게 되어있다.

과학의 목적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지만 진리의 의미는 매우 제한적이다. 과학이 발전해온 발자취를 보면 뚜렷한 목표 없이 이루어져왔다.

1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 진보에는 방향이라는 것은 실제 존재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지만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진리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좀 더 나은 세상, 진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연구를 실시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류의 발전을 더디게 했을수도 있고 오히려 후퇴를 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만약 숙제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내가 절대로 읽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었지만 이해한 부분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얻은 것은 있을 것이고 다음에 한 번 더 읽었을 때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깊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다음에 좀 더 내공이 쌓인 뒤 한 번 더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른 깨달음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저자인 쿤은 각 장마다 효과적인 설명을 위해 있어서 아주 구체적인 성과, 예등을 들어서 설명했다.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 조차도 어느 정도의 자연과학적 지식 기반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내용이어서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패러다임’의 제시가 첫 번째 주목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이 책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에서 ‘과학의 발전은 내용이 축적됨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라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은 올바르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 현상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로써 과거 천동설이 지배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을 때, 과학자들이 천동설에 관한 연구를 축적함에 따라 천동설이 위협받은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고, 이 위협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동설이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인 쿤이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가)에서 보듯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 의하면 지구에서는 항상 금성의 반대쪽 전면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초생달 모양만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에 의하면 초생달, 반달, 보름달의 모양이 모두 가능하고 특히 보름달 모양일 때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크기가 작고 반대의 경우에는 커지게 된다. 망원경에 의한 관측 결과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예측된 결과를 보여주었고 이것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생각됐다. 출처 : 고교생이 알아야 할 지구과학 스페셜

(가)에서 보듯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 의하면 지구에서는 항상 금성의 반대쪽 전면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초생달 모양만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에 의하면 초생달, 반달, 보름달의 모양이 모두 가능하고 특히 보름달 모양일 때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크기가 작고 반대의 경우에는 커지게 된다. 망원경에 의한 관측 결과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예측된 결과를 보여주었고 이것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생각됐다.


출처 : 고교생이 알아야 할 지구과학 스페셜


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이 모두 똑같이 적용되는가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이론들을 “다양성”의 차원에서 인정하느냐, 아니면 최선의 것 하나를 가려내는 노력을 회피하

는 것이냐를 결정하는 개인 가치관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mind 자체가 다르면 서로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는 서로에 대한 가치절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했다. 이들은 공약불가능성으로 서로 비교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하게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으로 세계관이 변하는 것이고 이것은 엄청난 혁명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난 이후에도 우물 안을 제대로 탈출하지 못한 기분이어서 아쉬운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태 읽어 본 책 중에서는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이었고 이런 책을 이해여부를 떠나 다 읽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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